제목을 다 말하기 귀찮은 이 애니를 봤다. 귀찮으니까 그냥 방어력이라고 부르겠다.
이걸 본 이유는 어떤 분이 블로그에 댓글로 추천해주셨기 때문이다.
정말 많은 것들을 추천받았지만 굳이 이 기묘한 애니를 고른 건,
다른 작품들은 다 이런 느낌이었던 와중에....
혼자 독보적으로 제목과 장르가 눈에 띄어서였다.
"요즘 대.유.행인 이세계게임판타지먼치킨주인공라노벨애니인데 백합이라고? 어이어이 굉장하잖냐~~www" 하고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대충 검색해 보니 주인공도 여자고 주요 등장인물들이 거의 다 여자인 듯 했다. 오케이. 이 정도면 할 수 있다. 내 라쓰비앙 짬밥으로 봤을 때 여자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데 백합이 아닐 수가 없다!! 해보자!! 백합계의 새 지평을 열자!!!!!!!
그렇게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냥 제목이랑 이 사진만 봐도 대충 상상이 되지 않는가?
배경은 판타지 게임이고(vr이긴 함), 가운데에 있는 애가 주인공이고, 그리고 쟤는 방어력에 올인했다. 그래서 짱 쎄다.
-끝-
그렇다고 여기서 끝내면 내가 왜 이렇게 분통터져 하는지 아무도 모를 테니까 힘내서 좀만 더 말해보겠다...
얘 이름은 메이플이다. 게임 닉네임이 메이플이고 현실세계 이름은 따로 있겠지만 딱히 필요 없다.
그냥 순진하고 해맑은 주인공이라고 해도 되겠지만 이 녀석의 실상은 금강불괴만근추무통무지성괴물이다.
무엇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얘한텐 일말의 인간성도 없다는 사실이다.
1화부터 느낌이 왔다.
존나 큰 드래곤이랑 싸우는데 자기한테 무기가 없다는 이유로 살아있는 드래곤의 생살점을 뜯어먹는 걸 보고, 얘가 보통 이상한 애는 아니구나 싶었다.
그런데 2화가 시작하자마자 자기 능력치를 올리겠다고 방금까지 날아다니던 머리통만한 벌레들을 씹어먹는 걸 보니,
이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무지막지한 애가 주인공이라고? 근데 이게 백합이라고? 나는 정말 혼란스러웠다.
그렇지만 메이플의 친구 가 등장하자, 나는 모든 만화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사리 다. 메이플의 현실 친구로, 메이플을 게임하라고 꼬셨다. 근데 사정 상 게임을 좀 늦게 시작해서, 사리가 게임에 들어왔을 땐 메이플은 이미 괴물이 되어 있었다.
어라...이분...괜찮지 않나? 현실친구 학교친구에 게임하라고 끌어들였다고? 이거 흑심을 품은 계략 아닌가? (흑심은 라쓰비앙이 품었다) 생긴것도 꽤 백합만화에 나올 것 같다. 가능성이 있다!
친구가 등장하자 메이플도 약간의 인간성 버프를 받고 좀 괜찮은 애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오래 가진 않았지만...
그리고 3화에서 메이플이 존나쎄고무겁고큰 방패를 버리고(?) 더존나쎄고더무겁고더큰방패를 새로 사자...
사리는 그걸 축하해준답시고 좋은 곳을 데려가주겠다는데...
별들이 반짝거리고 은하수가 흐르는 우주 배경에 웬 귀족 테이블 한상이 차려져있는 (VR)공간으로 메이플을 데려가서 (VR)음식과 (VR)음료를 마신다.
이 갑작스러운 우주 레스토랑 VR 데이트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사리는... 존나 부치구나...~
하지만 메이플은 인격이 없는데 걔한테 아무리 간쓸개를 빼줘봤자...~
이런 우려를 품고 나는 애니를 계속 봤다...
(그런데 정말 애니가 너무너무 재미가 없었다... 이런 장르는 거의 처음 봤는데 나랑 정말 안 맞았다. 1.5배속으로 봤는데도 재미가 없었다.
나는 그냥 동성애를 보고싶었던 것 뿐인데, 동성애 장면 하나를 보려고 아무 상관 없는 인간들이 게임하는 걸 20분이나 보고 있어야 했다. 마치 정보 하나를 얻으려고 남자가 설명하는 10분짜리 유튜브 동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
주인공이 개사기캐고 뭐든 방어해서 재미마저 방어하는 기분이다.
7화 보면서 화가 날 지경이었는데...
주인공이 퀘스트 받음-몬스터 안 마주치고 날아가서 클리어-끝, 반지 찾아주세요-어 내가 갖고있어요-끝, 이거하세요-어 이미 했는데요?-끝 이렇게 퀘스트 세 개가 홀라당 끝났다. 이 장면이 나오는 시간보다 내가 이 문단을 적는 시간이 더 길 거다.
주인공은 아무 노력 없이 사기 능력으로 다 할 수 있는 이 게임을 대체 무슨 재미로 하는걸까? 이젠 고난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주인공은 보기 힘든걸까? 내가 시대에 뒤처진걸까?
근데 제일 열불 터지는 건 주인공이 뭘 하든 에에~~~메이플쨩 대단해~~라고 해주는 (메이플만큼 인격이 없는) 메이플의 깔들이다. 얘네는 정말 메이플을 좋아해서 그런다기보단 방청객 알바처럼 메이플의 행동에 오~~하고 반응해줄 뿐이다...... )
(안 읽으셔도 됩니다)
.....보면서 위와 같은 불만이 생겼지만 꾹 참고 봤다.
동성애만 나오면 저정도 쯤이야 이겨 낼 수 있다는 생각에...
그래서 동성애는 어디있냐고?
없다....
이 애니에서 유일한 희망은 사리였다.
저 위에 포스터에서 보이는 등장인물은 많은데 그 중에 라쓰비앙 같은 애는 사리뿐이다. 나머지는 다 메이플의 깔이다.
맨 왼쪽 꾸부 아니냐고? 그 다음 애는 아가씨팸 아니냐고? 파란머리 언니는 긴머부 아니냐고?
아니다. 그냥 메이플의 깔이다.
이 사람들이 뭔지 알 수 있을 만큼의 분량도 비중도 인격도 없다.
메이플쨩 대단해~~~ 정말 최고야~~~만 외치는 메이플 전속 칭찬머신들이다.
오른쪽에 쌍둥이 둘은 아예 라쓰비앙 분석에서 논외인데, 왜냐하면 너무 kawaii함을 노리고 나온 모에모에 캐릭터에 메이플의 1등깔이기 때문이다.
깔들은 현실 모습이 안 나와서 실제론 뭐하는 인간들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저 쌍둥이는 분명히 미소녀의 껍데기를 쓴 아저씨들일거라고 생각한다. 저게 현실 인간의 모습일리가 없다.
근데 슬픈 건 얘네들이 등장하고 길드가 생기면서 사리가 점점 메이플 곁에서 밀려난다는 것이다. 특히 저 쌍둥이가 원흉인데 쟤네의 모에모에함을 챙겨주느라 사리는 아무도 신경쓰질 않는다. 쌍둥이가 나온 후로 사리는 나름 주인공의 친구 포지션에서 그냥 배경에 서있는 부치 1이 된다.
그래도 사리는 부치의 숙명에 따라 혼자 엄청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길드끼리 대항전을 할 때 혼자 날고 기고 뛰어다니면서 부치파이트도 하고 그런다. 길드원들이 다 메이플의 노예남 노예녀라서 사리가 하는 일이 그닥 특별하게 여겨지진 않지만 엄청 열심히 하는구나 싶을 정도론 나온다.
오른쪽에 있는 애는 프레데리카라는 다른 길드 애다. 혈혈단신으로 처들어온 사리랑 부치파이트를 뜬다. (생긴건 참 마음에 드는데 얘도 분량이 쥐똥만해서 뭐하는 앤지 알기도 전에 애니가 끝났다.)
그런데 지친 사리를 프레데리카네 부대가 막고 끝장을 보려 하자 메이플이 와서 구해준다!!! 그리고 예의 그 인간성으로 적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다.
근데....이게 끝이다.... 사리는 아무 감정 표현도 못하고 깔들만 메이플 대단해~~메이플 최고~~~라고 할 뿐이다. 사리 되게 할말 많을 것 같은데 아무 말도 못한다.
이게 바로 사리의 문제점이다.
동성애를 할거면 투쟁해서 쟁취를 해야하는데 그런 불타오르는 투지가 부족하다. 깔들이 메이플한테 딸랑딸랑 거릴동안 혼자 구석에서 가만히 있는데 메이플이 널 봐주겠냐? 그 인격 없는 메이플이??
메이플이랑 둘만 게임할 때는 급발진해서 레스토랑 데려가고 그러더니 다른 사람들이 있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건 투지가 부족해서 그런 거다. 어떤 짓을 해서라도 여자.를 쟁취하고... 이 애니를 백합으로 만들겠다는 투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애니는 환경이 거의 동성애 탄압 수준이라 사리에게 그런 짐을 지우는 건 큰 부담일 것 같다...
이렇게 동성애에 대한 희망은 사라지고...
드래곤과 벌레를 뜯어먹던 메이플은 괴물도 잡아먹고.... 괴물이 되어서 사람도 잡아먹고... 괴물 분신술을 써서 적들을 학살하는 걸 대충 마지막화의 좋은 분위기로 퉁치고...
'게임해서 다행이야 인생이 바뀌었어^^'라는 게임 중독자같은 대사를 내뱉으며 애니가 끝난다......
방어력 애니를 본 건...
동성애를 탐하다가 지옥불에서 벌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 불구덩이에 뛰어든 건 나 자신이다.
나무위키에서 대충 등장인물 얼굴만 훑어보곤 몸을 던지면 안 되는 거였다.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동성애를 하려 하다니 벌 받을만 하다...
동성애는 항상 진심으로! 나도 사리도 라쓰비앙들도 모두 기억하도록 하자...!
(원작 라노벨은 백합이라니까 진짜.를 원하시는 분들은 그걸 보시길... 전 애니를 보고 너무 지쳐서 안 볼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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